파일명 m20_00_00_00.geombnd. 보스 ID가 3000000으로 시작하는 스크립트들. 아직도 이쪽 디스코드 일부 채널에서는 이걸로 밤새 토론하는 애들이 있다. 나도 작년에 이걸 처음 보고 나서 한동안 다른 게임 못 잡았다. 데이터를 까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프롬 게임은 보통 잘라낸 요소가 그냥 더미 데이터로 남는 경우가 허다한데, 여기 이 세 개는 좀 다르다. AI 비헤이비어 트리가 완성돼 있고, 히트박스와 애니메이션 블렌딩까지 다 붙어 있다. 그러니까 그냥 '못 만든' 게 아니라 '만들었는데 뺀' 거다.
## 게일의 잔영, 혹은 울드 궁정의 기사
첫 번째 미사용 보스는 임시 명칭이 거의 굳어졌다. 커뮤니티에선 울드 팰러스 나이트(Uld Palace Knight)로 통한다. 붉은색 배리어를 두르고 있고, 왼손에 작은 방패가 아니라 황금률 봉인 비슷한 촉매를 들고 있다. 이놈의 가장 큰 특징은 반격기 트리거. 플레이어가 경직을 주는 순간 패리 모션이 나오고, 거기에 당하면 무조건 임사급 대미지가 들어오는 구조다. 맞으면 체력이 1 남는 게 아니라 그냥 죽는다. 이건 PvP용으로 설계된 메커니즘인데, 그걸 PvE 보스에 넣어둔 셈이다.
이게 왜 짤렸냐고? 여기서 의견이 갈리는데, 나는 맵 구조 때문이라고 본다. 파일 내 연결된 배경 ID가 m20_00인데, 이건 엘파엘 내부 브레스 지역을 가리킨다. 근데 그 공간의 레이아웃을 보면 기둥이 너무 많다. 저 반격기의 모션값이 직선형인지 광역형인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지만, 좁은 공간에 저런 패턴을 넣으면 카메라가 맛이 가는 건 확실하다. 퀄리티 컨트롤에서 탈락했을 확률이 높다. 가끔 이런 거 보면 게임 기획도 결국 공간이 구겨서 접대 장소 추천하듯 자리 잔 걸리는 거랑 비슷하다.
## 무명의 왕도자와 흑검 변형체
두 번째는 더 난해하다. 파일명에 Chaotic Gore Magala 라고만 박혀 있는데, 이건 몬헌 크로스오버가 아니라 그냥 작업자가 농담으로 붙인 이름 같다. 외형은 말리케스와 동일하다. 근데 AI 트리를 까보면 페이즈 2에서 흑검 대신 쌍수 단검을 꺼낸다. 여기에 출혈치가 붙어 있고, 플레이어의 출혈 상태를 감지하면 추가 대미지 보너스가 들어가는 로직이 있다. 자기 상태이상에 반응하는 보스는 프롬 역사상 거의 없다. 그나마 비슷한 게 블러드본의 불완전한 짐승 정도인데, 그건 랜덤 발동이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말리키스가 ‘죽음의 룬’을 해방하기 전에 이 모드를 썼을 가능성은 없었을까. 실제로 커뮤니티에선 이걸로 퀘스트 분기 떡밥을 제기한다. 만약 그가 살아 있는 구르랑크로 등장하고, 그걸 먼저 처리하면 이 두 번째 폼이 나오지 않는다는 설계였을 거다. 모델 자체는 완성됐지만, 탈리스만 슬롯의 이벤트 트리거가 꼬였다. 이거, 게임 내 이벤트 플래그가 스파게티처럼 꼬여서 나중에 통째로 빼버린 경우다.
## 깨지지 않는 달, 리나의 또 다른 얼굴
마지막 하나가 제일 골때린다. 모델 ID 3099000, ‘Moon of Rina’. 라니와 연관된 또 다른 보스인데, 잘 보면 이게 라데곤과 렌나라의 결합체다. 상반신은 라니의 모습이고, 하반신은 완전히 별 짐승이다. 패턴 중에 플레이어의 FP를 강제로 0으로 만드는 기술이 있고, 이걸 맞으면 일정 시간 동안 주문 시전이 봉인된다. 순수 캐스터 빌드는 여기서 그냥 게임이 끝난다.
이 보스가 짤린 이유는 아마 난이도 때문일 거다. 프롬은 전통적으로 특정 빌드를 완전히 무력화하는 보스는 잘 안 넣는다. 그런데 이건 ‘안 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능을 끄는 거라서, 밸런스 조절이 불가능하다. 다만 파일을 보면 이 보스의 전리품으로 '달의 반지 - 신부의 증표'라는 반지가 있는데, 이걸 끼면 라니 엔딩에서 추가 컷신이 열리는 플래그다. 그러니까 이 보스가 살아 있었다면, 우리가 알던 나인 엔딩보다 한 가지 더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이 데이터를 확인하는 법. 패치 1.00 디스크 버전에서 치트 엔진으로 m20_00 필드에 강제 스폰시키면 된다. 단, 1.04 이후 빌드에선 아예 트리가 꼬여서 튕긴다. 이거 해보고 싶은 분들은 반드시 오프라인으로 하시라. 안 그러면 밴 먹을 수도 있다.